사랑받지 못하는 시인 - 내 안의 통제드라마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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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배역들이었다. 때론 감정이입이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욹어먹은 시나리오였다.

이제 나는 다시 작가의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다.

... 무엇을 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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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지 못하는 시인
            - 이제야 알겠다. 결핍된 마음은 절제하지 못한다.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내가
      너한테 하듯이, 부탁이야. 너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 
     그의 눈자위엔 
      흔들리는 애원이 잔뜩 고여있다 그러나 여인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남자는 마음이 급해진다
      거짓말이라도 좋아, 한번만 응? 응?
     그녀가 머뭇머뭇 입을 여는 동안 그의 눈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같다
      그런 말이 무슨 필요있어요. 지금까지 난 당신과 항상 함께 했는데. 하지만 당신이 바란다면 말하죠.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그녀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문득 사기당하는 기분이다
      그럼 나하고 여태 함께 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거야? 아니야. 다시 말해 넌 자신을 속이고 있어.         
     그런게 아니예요. 하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녀가 일어서려 하자 사내는 여인의 팔을 급하게 잡아끈다
      어딜 가려는 거야?
     더이상 여기 있을 수가 없어요. 놔요. 이런 분위긴 정말 참을 수 없어,
     뭐, 참을 수 없어?
     그의 눈빛엔 지난 세월의 건조하고 목마른 기억들이 하나하나 들추어지기 시작했다 - 그는 상처받은 남자였다
      그래서 날 버리겠다고?
     그게 아니라, 이런 당신이 정말 싫다는 거예요.
     그 말이 불똥이었다 마침내 그의 눈에선 불이 붙기 시작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였어. 내게 거짓말만 해댔지. 
     그럼 어쩌란 말이예요? 당신이,
     내게 사랑을 보여주란 말이야! 
     그는 그녀를 쓰러뜨린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어서 진심으로 말해! 사랑한다고. 어서 내게 말해!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이러지.. 말아요.. 이럴수록... 아무, 것도......
     그는 절망적이 되어 더욱 사정하듯 팔목에 힘을 가한다 
      그러니까 진심을 말하란 말이야! 사랑한다고! 한번이라도 내게, 버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무 말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는 다시 크게 사기당한 느낌이다 
      한참 촛점을 잃고 여인의 시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다시 살기에 차 번뜩이기 시작한다 
      너의 사랑을 꼭 확인할 거야. 너가 날 버리지 못하도록. 너는 날 사랑하니까, 아니 그러면서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일어난다 부엌에 가 자신의 절망처럼 날이 선 식칼을 들고 온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허기에 지친 사람같이, 
   그는 그녀의 상체를 난도질한다 
      잠시후,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는 그녀의 허파와 심장이 핏물에 젖어 그 앞에 놓여진다 그는 다시 주저 앉는다 
      눈에 타오르던 불길은 서서히 잿더미가 되고 싸늘한 회한이 그의 몸을 떨게 했다 이제 다시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책상위에 한 시인이 엎드려있다
시인은 
한참만에 수그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몇끼를 굶은듯 초췌하다
장판 위엔 숨이 끊긴 언어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한번 죽이면 살릴 수 없는 글들.
시인은 알고 있다 앞으로도 
몇번이나 더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걸
그러나 시인은 
아직도 허전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뭐라도 챙겨먹어야 한다
방바닥에 엎드려 시인은
한나절의 주검을 치워 담는다
그리고 불장난한 자리를 손털고 일어나듯 
숨을 크게 들이쉬며 허리를 편다
창밖은 아직 밝구나,
의식의 창밖 어디선가 
이름 지어지지 않은 오랜 사랑이 
그를 부르는 것만 같다.
시인은 챙겨먹는 것도 잊고
다시 용기를 내 책상앞에 앉는다
닫힌 투명창 안으로
깨끗이 놓여진 백지가 밝아온다
그래, 사랑은 언제나 새 생명을 만들었지
봄잎같은 애정이 잊은듯이 돋아나고 
펜을 잡은 시인은 
떨리는 손으로 써내려 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하얀 종이 위에
아무것도 못 껴안는 텅빈 사랑에 넘쳐,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몰라...


                                                                                                        -19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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